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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는 정도까지만 ’할 수’있다 = ‘번다’는 정도까지만 ‘벌 수’ 있다.

by 마돈사 2024.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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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만들어진다. 조건과 환경, 그리고 삶의 모든 경험은 우리 습관과 마음이 원인이다.
마음 자세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모든 힘과 성취, 그리고 소유에 관한 비밀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달려있다.
그렇다. 우리는 ‘할 수‘ 있기 전에 ’한다 ‘는 마음 상태여야만 ‘한다’는 정도까지만 ‘할 수’ 있다. 이 ‘한다’는 마음 상태는 우리의 생각에 달려 있다.
-찰스 해낼



생각이 절로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은 내면세계에서 현실입니다.
외면세계에서 감각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다 현실인 것처럼,
내면세계에서도 내적 감각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다 현실입니다.
단지 이런 내적감각의 습관이 길러지지 못했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고 느끼는 것만 현실이라 여기게 된 것이죠.

생각의 힘은 몰입을 통해서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고도의 몰입까진 아니어도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과 같이 생각에 빠지면,
오히려 외적인 감각이 차단된 것과 같은 상태가 됩니다.



몸이 자세를 취하듯, 마음도 자세를 갖습니다.
몸과 마음은 양 방면의 같은 현실입니다.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은 ‘사고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할 수 있을까?’와 ‘할 수 있다’는 다른 사고방식입니다.
하나는 두려움과 의심을 포함시키는 말입니다.
내적인 부담을 지지 않을 수 있고, 외적으로 모면할 길을 준비하는 말이죠.
그래서 내적으로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핑계나 변명을 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용기와 확신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내적으로 책임을 지고, 외적으로는 자기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적으로는 자존감이 되고, 외적으로는 다른 이들을 이끌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다고 생각한 것은 어떻게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마음의 자세가 아니죠.
삶이 주는 도전을 받아내며, 하루하루 마음을 훈련한 결과입니다.

헬스장에서 당장에 자기 체중에 맞먹는 무게를 들어오리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최종적으로는 내 몸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반복하여 들어 올리는 습관을 연습하면, 결국 해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렇듯 외적현실과 내적현실은 비슷합니다.



겉으로 대단해 보이려면 안으로 대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래 위에 성을 쌓은 것이죠.

돈을 벌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돈을 번다는 생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생각을 하다 보면,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작은 이득이라도, 이득은 이득과 이어진다는 이치가 적용되어,
점차 이득이 커져나가게 됩니다.

작은 동전이라도 있다면, 돈은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 난 돈이 없다 ‘라고 생각한다면,
돈이 없는 날이 계속됩니다.

돈은 있습니다. 바라고 원하는 만큼 없는 것이지요.
돈이 있고, 이제 이 돈은 더 많은 돈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죠.

이게 돈벌이의 가장 중요한 마음의 습관입니다.
정말 이 습관을 갖기 시작하면, 얼마 후 500원이 500만 원이 되고,
5000만 원이 됩니다.
커 보이던 빚도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자꾸 없다는 생각이 더 믿어질 수 있습니다.
생각의 습관, 생각의 자세가 그렇게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다시 자세를 잡아야 하죠.

‘나는 돈이 있다. 나는 돈을 벌 수 있다. 나는 OOO원을 소유한다 ‘는
생각이 내면세계에서 먼저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내면세계에서 현실이 된 것은
반드시 외면세계에 실현됩니다.

이 반대로 확인하려 하니 안 되는 것이죠.
반대로 하게 될 때는 계속 실망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돈만 벌면 다 될 것이라 여겨
돈만 벌다가는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였죠.)

많은 성공철학에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외면의 이치와 내면의 이치가 모두 세상의 이치이며,
모두 레알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역전과 혁명의 시작이니까요.
(혁명가들도 민중을 운동하게 만들기 위해 사상을 가르친다는 점은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와 얼마나 비슷한가요?)

내면세계의 현실은 반드시 외면세계의 현실이 됩니다.
이것을 변화라고 합니다.
외면세계의 현실이 내면세계의 현실을 바꾸는 것이 된다면,
이것은 변질이라고 합니다.

다음 글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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