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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돈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 '나는 왜 살고 있나?'

by 마돈사 2024.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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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이 말이 현실적으로 정말 진실일까?, 이런 생각이 들만한 일이 얼마나 많을까요? 
세상이 내 편으로 보이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이런 암시가 헛된 수고로 느껴져 그만두고 맙니다.
그래서 인생이란 커다란 방향과 목적을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마치 영화필름이 영사기를 통과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듯이 말하죠.
인생을 영화라고 비유한다면,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어떤 순간이든 그것은 지나갑니다. 
경험이란 것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니까요.
이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직선입니다.
계속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시간은 돌기도 합니다.
지난여름과 올여름처럼, 작년 7월과 올 7월 그리고 내년 7월처럼요.
다시 장마가 오고, 비피해가 있었으니, 내년 여름에 그런 일을 예상할 수 있죠.
그리고 대비할 수 있고요.
그래서 작년 여름에 했던 경험이 올여름에는 지혜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0대에 깨닫지 못한 것을 50이 지나서야 깨달았다면
이 지혜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요?
물론 지금부터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큰 지혜이기도 하지만
다시 10대를 경험한다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요?
 
카르마는 단순한 업보로 벌을 받는 개념이 아니라,
이런 기회를 말합니다.
우리의 생은 다시 돌아와 이전에 풀지 못한 무언가를 풀어낼 기회를 줍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어떤 분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지만, 세상엔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고 보면 그만이지요.)
 
시간은 직선적으로 경험되지만, 커다란 관점에서는 돌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오는 시간이 또 지나가고 있는 것이죠.
 
이런 시간관념은 우리의 생을 크게 보도록 도와줍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생은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도록 배움과 기회를 주는 현장이 되죠.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더 나아지고 있다'라는 진술은 바로 '나는 날마다 사랑하는 자가 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가는 중에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한이 됩니다. 맺히면 카르마가 됩니다.
맺힌 것은 풀려야만 흐르게 됩니다.
용서는 맺힌 한을 풀어 흐르게 하는 사랑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생은 사랑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사랑이 바로 완전이자, 그것이 바로 우주입니다.
우주의 에너지나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할 때, 인생은 이것을 배우고 알아가도록 숙제를 내어주고,
그 숙제를 풀지 못하거나 풀어내면서 모두 점점 조금씩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나는 50년이 넘도록 이것을 몰랐습니다.
아니 지금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최소한의 지식으로 힐끔 보고 있을 뿐입니다.
 
어린 나를 학대한 아버지를 용서해야겠다는 생각,
나를 서운하게 한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생각,
나의 잘못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생각.
이런 생각들은 생각쓰레기가 아니라, 새로운 생각, 사랑으로 방향을 잡은 창조적 생각들이죠.

 
그분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려는 마음,
그리고 나 또한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한 말들과 행동을  미안해하는 마음,
나 또한 모질게 대하고, 오해받게 해서, 그들도 나에게 얼마나 서운했을까 하는 입장 바꿈으로 부드러워지는 마음,
잘못한 나를 나 또한 인정하고 용서하는 마음.
이런 마음은 감정쓰레기가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이자. 정화된 감정이 맞이하는 창조적 감정입니다.
 
여기서부터, 진짜 돈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모아도 흩어지는 이유는 돈 모으는 재주가 부족한 것이 아니죠.
소위 '운'이라고 말하는 것은 '움직임'을 말합니다.
 
돈과 인간관계는 모두 '에너지'와 관련하고,
그 에너지의 속성이 사랑이기에,
이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기초입니다.
이 기초를 깨닫는 것이 돈과 사람을 내 인생에서 새롭게 창조하는 시작입니다.
 
성경에서 신은 '내 앞에서 완전하라'라고 했습니다.(나는 종교가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완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너무나 부당한 요구입니다.
하지만 그 뜻은 바로 '사랑'으로 향해 가라는 뜻입니다.
 
사랑이 완전입니다.
그러므로 돈과 사람에 대한 관점은 이 관점에서 시작되어야만 완전합니다.
아니면 언제가 지나가버릴 돈과 언제가 지나가버릴 돈이 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시간 속에서 경험해야 하는 3차원적 세상을 사는 우리는, 
다 지나가는 것을 경험할 뿐입니다.
 
지나간 곳에는 무엇이 올까요?
또 지나갈 것이 오게 됩니다.
그 지나갈 것이 바로 돈이자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돈은 지나가지만 다시 올 것이고, 사람 또한 그렇습니다.
그렇게 '다시 올 돈', '다시 올 사람'을 맞이할 준비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너무 큰 개념이자 단순한 개념이고, 실체이자 비실체입니다.
너무도 커서 '공허'한 암흑과 같고, 실체여서 구체적입니다.
단순하게는 저항하지 않는 것이고, 비실체적이어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세상이 나를 돌보아 준다는 생각은 사랑입니다.
세상이 나를 공격하고 못살게 군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사랑입니다.
사랑은 때로는 나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이해에 눈을 뜨고 다시 태어납니다.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내가 창조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쓰는 이 글은 사실 나를 위한 글입니다.
스스로 어떤 제약과 작전을 세우지 않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가는 글이 나에게 자유를 줍니다.
나를 위해 내가 하는 일이자, 세상이 나를 위해 준 기회입니다.
 
부끄러운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 저항하지 않고 용서합니다.
받아들여주고, 안아줍니다.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줍니다.
용서는 용기가 되고, 기회는 다시 내 삶이 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은 지나가고 또 새롭게 다시 옵니다.
이것이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이라는 직선적인 시간과
다시 또 태어나는 윤회적 시간이 중첩되는 내 삶입니다.
 
생각쓰레기를 치우면서, 감정쓰레기를 흘러 보내면서,
나는 새롭게 다시 또 살아갑니다.
날마다,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배움이 없는 날에도 배움이 있습니다.
깨닫지 못한 순간에도 깨달음이 있습니다.
내가 다 인식하지 못해도, 나는 날마다 더 나은 존재,
'사랑하는 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내게 필요한 돈과 사람이 옵니다.
사랑할 수 있도록 우주는 자원을 제공합니다.
시냇물처럼 졸졸 오다가, 폭포처럼 쏟아지다가.
강물처럼 흐르고 바다처럼 풍요로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과 돈과 사람의 관계이자, 기초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이자, 인생은 이것을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반백년 인생에서 얻은 가장 크고 분명한 깨달음입니다.
 
그렇게 나는 돈과 사람이 새로워졌습니다.
돈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의 기초는 바로 여기서 시작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돈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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