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유는 의식에 의존한다
-찰스 해낼
소유는 의식에 의존합니다.
무언가를 내가 갖고 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생각을 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식은 무(비) 의식도 포함합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 생각하는 것‘과 수동적으로 ’ 생각이 난 것‘ 등이 모두 의식에서 비롯합니다. 많은 경우, 생각이 난 것을 생각하면서 생각이 이루어집니다.
저절로 어떤 생각이 들어옵니다. 또는 연상이 되는 경우가 있죠.
그러면 그 생각을 흘러 보내야 하는데, 생각의 울타리에 가둡니다.
붙잡아두고 그 생각이 이끄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대개 오해는 이렇게 일어납니다.
우리는 먼저 생각을 소유하고, 그 생각에 따른 생각을 소유하고,
그리고 사실로 믿기 시작합니다.
믿음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한 번 믿기 시작하면 커집니다.
믿음은 믿음을 불러오기 때문이죠.
진실로 믿으면 그것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믿음의 무서운 힘이죠.
믿음은 삶에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믿음은 모든 이에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사람을 안 믿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정확히 사람을 안 믿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을 믿지 않음이 본인의 삶에 유리한 것을 경험한 것이기에,
점점 그 믿음은 커져갑니다.
믿음은 경험을 통해 각 자의 진리가 됩니다.
어떤 것을 참이라고 받아들이고 나면, 그 사람의 잠재의식, 무의식은
그 참이라 여긴 것을 실행하고, 이루는데 집중합니다.
믿음은 내면세계에서 일어나지만 경험은 외면세계에서 일어납니다.
이 둘이 일치될 때, 그 사람은 존재자체가 그런 사람이 됩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기가 왜 어려울까요?
그들은 믿음과 경험이 일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경험에 의해 더 확고해졌기에, 이제는 아무런 비판이나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무의식적인 존재가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무섭게 우리를 만들어갑니다.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가기에, 어떤 믿음을 소유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경험이 결정됩니다.
최신 스마트폰을 소유했습니까?
그러면 먼저 당신이 스마트폰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 의심이 없었기에,
결재를 하고 소유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면 일어날 수많은 좋은 점에 대해, 이미 얻은 경험으로 인해,
앞에 놓인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의지를 갖게 되고,
그래서 부담이라는 것이 생겨도 이겨내어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이죠.
무언가를 갖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노력과 대가보다,
그것을 갖게 되면 나에게 생기는 좋은 점에 대한 믿음이 훨씬 컸던 것입니다.
물론 종종 이러한 믿음이 잘못된 것이란 것을 나중에 깨닫지만,
다시 고가의 무언가를 구입할 때면 다시 이전의 믿음이 살아납니다.
믿음은 웬만해서는 파괴되지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실패했다고 해도, 다시 믿음이 일어납니다.
믿음이 잠재의식에 굳건히 자리 잡은 후에는
의식적인 의심으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올바른 믿음을 의식적으로 키워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올바른 믿음을 갖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 이것이 과연 진실일까?‘라는 질문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릇된 믿음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은 참된 진리를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 같은데, 그럼에도 작은 틈을 만들어 그 틈에 질문을 넣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 진실일까? 참일까?”
이 질문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우리 의식은 질문에 답을 하려는 특징이 있습니다.
’ 이거 정말 진짜야?‘
상대방이 사기꾼이라면 이런 질문은 그 상대를 흔들리게 합니다.
아무리 태연한 척 애를 써도, 이 질문은 상대에게 불안을 가져오고, 그 흔적이 남습니다.
진짜는 장황한 부연을 하지 않습니다.
진짜는 외면하지도 않습니다.
진짜는 잘라 말하지도 않습니다.
진짜는 답답해하지도 않습니다.
진짜는 참된 오라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진동입니다.
편안한 진동을 유지하고 태연합니다.
이것은 그런 척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평화로운 진동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자기의 소유를 만들었다면,
그 사람은 편안할 수 없습니다.
물론 사기꾼들은 이 편안함을 잘 연출합니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고, 의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틈이 보입니다.
올바른 믿음을 키워나가는 것과 올바른 소유는 신경이 연결된 것과 같이 하나입니다.
뭐가 되든 부자가 되면 된다. 그런 후에 달라지면 된다는 생각은 그릇된 믿음 위에 소유를 만드는 것입니다. 맞는 말처럼 보이고, 빨리 부자부터 되면 된다는 말이 매력적으로 들리겠지만, 반드시 후폭풍이 일어나고, 결국 부자가 되지만 다시 가난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소유는 의식에 의존한다는 말이죠.
부자가 말하는 것은 다 진실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들의 방법을 듣다 보면, 무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근심이 없고, 걱정 없는 부자는 없습니다.
그들이 하는 그 말만 믿으면 안 됩니다.
그것보다는 그 생각, 보이지 않는 이면, 그들의 의식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가진 것이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의식과 믿음이 그릇되었다면, 그것은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는 모래성일 뿐입니다.
모래성 짖기를 따라 하기 위해 고액을 지불하며 배우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정말 소유는 의식에 의존하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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