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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나 - 너 - 우리

by 마돈사 2024.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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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와 다르다, 이런 생각이 지배적일 때, 우리는 각 사람의 '차이'를 더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이 친구는 나와 이런 부분이 다르군'

 

그렇습니다. 지문이 다 다르듯, 사람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재밌는 세상이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괴롭기도 하지만, 그 괴로움으로 인해 인간의 역사는 '발전'과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문제는 '다름'을 '틀림'으로 보는 것이죠.

서로 '틀리다'로 생각하게 되면, 한쪽은 '맞고' 다른 한쪽은 '맞지 않은 것'이 됩니다.

 

'그 사람은 틀렸어!'

 

내가 기준이 된 것이죠. 그래서 나는 옳고 그는 틀린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틀렸어...;

 

열패감에 자아가 휘청거립니다.

기운이 빠지고 외롭습니다.

 

어린 시절은 자의식이 굳어지기 전이라, 잠재의식으로 모든 거이 거의 다 들어옵니다.

그때, 지적을 많이 받고, 꾸중을 많이 듣고 자란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옳고 그름', '맞고 안 맞고'의 기준으로 세상을 봅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보게 되지요.

 

이렇게 형성된 '나'라는 자의식은 '너'를 다르게 보지 않고 틀리게 봅니다.

여기서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가 시작됩니다.

 

다르게 보게 되면, 같은 부분을 만날 때 반갑고, 다른 부분은 흥미롭습니다.

틀리게 보게 되면, 같은 부분을 만나면 다행이라 생각하고, 틀린 부분에서 긴장하게 됩니다.

 

다르게 보는 사람은 열린 사고를 더 넓힐 기회로 사람을 만납니다.

틀리게 보는 사람은 뚝뚝 끊어진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 그냥 끊어버리는 쪽으로 갑니다.

 

모든 사람과 다 잘 지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과 긴장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는 실상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가 여러 경험을 위해 분화된 것이 개인입니다.

다양한 경험을 위해 우리는 서로 다르기로 했습니다.

본래 이 '다름의 기획'은 차이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름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관계의 핵심이고 진보된 사회가 실현하는 가치입니다.

하지만, 인간사를 보면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인종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름으로 인해, 존중이 아니라 갈등을 일으키고,

그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며, 틀린 것을 바로 잡기 위해,

존재를 파괴하고 괘멸하고자 합니다.

 

전쟁은 폭력입니다.

폭력은 어떤 경우라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틀림으로 해석한 많은 것으로 인해 서로 '복수' 합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성경 속 이야기를 자주 빌려옵니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지혜가 풍성한 예시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죠.

고전으로서 성경은 좋은 예시를 제공합니다.

 

2024년 현재 성경의 구약 앞부분을 서로 믿고 있는 이들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사실 성경 안에 있었던 것으로,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두 명의 형제가 나옵니다.

형이 동생을 들판에서 돌로 쳐 죽인 이야기죠.

이게 인류가 처음 보게 된 '형제'입니다.

 

그들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였습니다.

그런데 그 둘은 너무나 다릅니다.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느끼는 것, 다 다르죠.

동생보다 인정받지 못한 형이 동생을 유인해 살해합니다.

형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참 후에 또 형제가 나옵니다.

이 둘은 배가 다른 형제입니다.

서로 다른 어머니 아래서 훈육되었습니다.

당연히 너무도 다릅니다. 

 

동생이 형을 속이는 일로, 형은 크게 화가나 동생을 죽이고자 합니다.

동생은 형의 노여움을 피해 타지로 도망갑니다.

한 참 후에, 화해를 했지만, 이 둘은 섞이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키워갑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 내가 맞다는 생각.

바로 이 생각으로 시작되어

서로를 없애야 끝날 것이라는 망상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은 모두 형제입니다.

지구에서 태어난 우리는 고향이 같은 '인간'이라는 종입니다.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우리는 같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다름은 사실 작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다름을 크게 만드는

'생각'이라는 것이 서로를 틀린 것으로 보게 합니다.

 

'나'는 실상 '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지구에서 '현실'이라는 꿈을 꾸고 있는

우주에서 온 하나의 존재입니다.

 

나,너,우리

 

인간관계는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깨닫기 위한 길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실상은 우리가 '하나'임을 배워가고 깨닫는 과정이 인생이죠.

 

'너와 나는 하나지만 다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의미입니다.

 

'너와 나는 틀리기에 하나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악'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지만, 다름을 경험하는 중이란 생각을 키워갈 때,

인간관계가 점차 성장하고 깊어집니다.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류애'라는 것을

각 사람이 깨달아 가는 만큼,

세상은 진보하고, 세계는 성숙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는 개인이 우리라는 인류에서 받은 역할이자 임무(사명)이고,

이것을 배우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이 땅을 오고 또 오는 중일 것입니다.

 


오늘 등교하는 학교에서

출근하는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다른 나'입니다.

 

다름을 보면 존중해줍시다.

그렇게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세상은 바로 '나'라는 주인공이 사는 세상입니다.

나를 위해, 내가 사는 세상을 더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너의 다름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훌륭해지고 있는 중입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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