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오해하는 걸까?
이 정도의 생각이 든다면 상대가 내 말에 오해하는 경험을 많이 해 본 것이죠.
'왜 내 말을 오해하는 걸까?'가 더 정확한 표현일 텐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내 말'이 아니라, 그냥 나란 사람이 오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오해가 일어나는 상황이 자꾸 반복되고, 깊어집니다.
그러자 오해는 사실이 되어버리죠.
오해는 우리가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졌기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상대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길 때, 오해는 바로 시작됩니다.
내가 파란색 안경을 쓰면 세상은 파랗게 보이고, 노란색 안경을 쓰면 노랗게 보이듯,
오해는 내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고 사는가에 따라 일어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오해하는 것은 내가 쓴 안경을 벗으면 됩니다.
그런데 내 말이나 행동에 다른 사람이 오해한다면... 바로 이게 문제죠.
영업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옷을 말끔하게 입고, 머리도 단정하고, 신발이나 액세서리에도 신경을 쓴다는 것입니다.
'세일즈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들이 그렇게 입고 말도 존칭을 쓰며 최대한 부드럽게 하는 이유는, 바로 오해를 줄이고 신뢰를 얻기 위해서이지요.
그럼에도 사소한 행동과 말투에 오해는 불쑥 일어나고 맙니다.
일단 오해가 생기면 진실을 아무리 말해도 핑계가 될 때가 많습니다.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가 있죠.
내가 아쉬울 것이 전혀 없을 때는 그나마 지나치면 그만인데,
내가 아쉬운 상황이라면 참 난감합니다.
어느 날, 상대가 말합니다.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해"
염치...,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것이 나를 향한 말이고, 내가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상대의 배려나 호의에 맞받아쳐 베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여러 차례 배려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했으나,
이미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어버렸죠.
인간관계에서 서로 간의 호의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기대합니다.
무조건적인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날 좋아한다고 해도, 나도 주는 것이 있어야 관계는 형성이 됩니다.
그래서 지나친 배려는 부담이 되기도 하죠.
상대가 원하지 않는 대로 무언가를 계속 상대에게 주는 것도 오해를 불러옵니다.
사실 오해를 오해로 인식하지 못한 오해가 얼마나 많은지요?
말 한마디, 글 한 구절, 톡에서의 문자...
아차, 한 순간, 이미 오해가 생겨버립니다.
아무리 조심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오해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말을 아껴도 오해가 일어나고, 말을 자세히 해도 일어납니다.
상대를 온전히 다 내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해시키려 하면,
오해는 싸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딱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상대방은 바꿀 수 없다!'
오직 나만 바꿀 수 있고, 변할 수 있습니다.
오해를 받았든, 오해를 일으켰든, 어찌 되었든
나는 나만 바꿀 수 있습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하는 말과 행동이 오해를 더 일으킬 때는,
오해가 풀어지기를 바라며, 나를 돌이켜 나를 새롭게 할 수만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를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타의든 자의든,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오해는 당연히 생기는 것입니다.
오히려 서로 너무 잘 이해한다면 그것이 귀한 것이자. 아니면 좀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는 서로 오해하며 삽니다.
이것이 인생의 기본 값이죠.
그래서 이해심을 키워야 하고,
그래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죠.
오해는 우리가 서로 생각하며 감정을 쓰며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로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인간의 숫자만큼의 우주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것이 바로 인간세상입니다.
오해가 일어날까 봐 겁먹고 움츠러들 수 있습니다.
성품이 착하면 더 그런 성향이 있죠.
그래도 오해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히려 이해가 정말 운이 좋고 귀한 것이라 여겨야 합니다.
수많은 오해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도록 세상은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일어난 오해를 풀 수 있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나 풀지 못한다면, 풀리도록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다져나가야 하죠.
그래서 인생은 외로운 게임이죠.
그래서 조금만 이해받아도 마음이 열려버리죠.
그래서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이해받으면 기쁩니다. 이 기쁨을 악용하는 일이 얼마나 많겠나요?
이해받으면 다행이라 생각하고, 오해받으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그저 나 자신을 돌보고 다져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이해와 오해라는 프레임이 보입니다.
여기 기준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죠.
나는 어떤 프레임으로 상황을 보면서 판단하고 있는 걸까?
내가 가진 프레임은 정말 진실한 걸까?
쉽게 말하면, 그게 정말 사실일까? 내가 정말 그것에 대해 올바른 분별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이해와 오해라는 무기로 현실과 싸우고 있는 중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이런 케이티 여사는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라고 합니다.
"그게 진실인가?"
"나는 그게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나?"
"그 생각을 믿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
"그 생각이 없다면 나는 누구일까?"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에 답하는 나는 누구일까요? 뭔가 억울해하고, 원통해하고, 답답해하는 나일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생각을 믿을 때, 나는 짜증과 화가 나고,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없다면 나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나였을 것입니다.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을 벗어야만 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이런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현실과 스파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세상은 날 도와주려는데, 나는 세상을 오해해 버린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재주와 기술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죠.
물론 매너와 예의, 그리고 말투 등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떠 받쳐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것들에 대해 관심하게 되었고, 이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흥미로워졌습니다.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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